ALL42 손톱 손톱을 기르는 일이 꽤나 멋지고 세련된 것이라 생각할 때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손톱은 조금만 자라나도 거슬리고 불편했다. 그 얕은 틈에 자리잡는 잠깐의 때와 답답하고 둔탁한 느낌이 싫었다. 채 다 자라지도 않은 얕은 손톱을 깎는 것도 싫었다. 그러다 사는 데 정신이 팔려 손톱을 깎는 사소한 일 조차 내일로 내일로 미루고 나면 어느새 부쩍 자라나있다. 게으름의 징표처럼 보이다가도 무언가를 견뎌낸 것처럼도 보인다. 집에 돌아가면, 손톱을 깎아야겠다. 2021. 2. 13. 나의 날들 나의 무수한 날들 속에는 당신이 없이 살아온 날들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날들 그리고 아마도 당신이 없더라도 살아내야하는 날들이 있다. 2018.11.27 2021. 1. 25. 2018.12.7 저편에는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그래도 가야만하는 곳이 있다. 그곳을 가기 위해선 물을 건너야만 한다. 물 속에서 발을 디뎌 걷다가 점점 깊어지는 바닥에 겁이 났다. 더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겁이 났다. 그래도 출렁이던 물결이 기억 나 그를 믿기로했다. 하지만 물결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오도가도 못하고 수면에 우두커니 떠있었다. 이제 발을 딛기엔 바닥은 너무 깊은 것만 같다. 끝을 모르는 바닥까지 가라앉아 걸어야할까 다시 물결이 움직이길 기다려야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계속 동동거리고 있다. 2021. 1. 25. 공식 사람이 사랑을 하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사람과 나 사이엔 언제나 성립하는 공식이 있어 항상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큰 착각이었다. 모든 수식 그리고 어떤 공식도 언제나 성립하진 않는다. 혹은 언제나 예외가 있다. 가설이 부서지는 건 잘못된 증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항상 성립하는 공식을 찾기위해 들이는 공력에 비하면 턱없이 쉽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가설이 거짓 이야기라는 뜻을 갖고 있어서일까. 어차피 공식화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2019.5.18 2021. 1. 25. 바다 바다는 물을 골라대지 않는다. 좁은 강줄기나 넓은 강줄기 약한 강줄기나 세찬 강줄기를 골라대지 않는다. 그렇게 모인 물은 어느새 큰 바다가 된다. - 2016.9.12 씀 2020. 12. 28. 식물일기: 허브 - 2 2020.12.05 허브를 심은 지 거의 한 달이 됐다. 허브딜은 웃자라서 물만 주면 맥없이 누워버린다. 그래도 가장 큰 떡잎에서 새로운 모양의 잎이 나왔다. 작은 불꽃놀이 처럼 생긴 잎이다. 로즈마리는 매우 느리게 싹이 나왔다. 기대반 포기반으로 냅두었는데 벌써 5개정도 싹이 났다. 왜인지 기특한 마음. 페퍼민트. 어쩐지 보고 있자면 짠하다. 솜발아도 거의 안되고 씨앗도 워낙 작아 과연 싹이 나긴 할런지 기대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아주 작은 돌맹이 보다도 더 작게 싹이 보인다. 왼쪽 위에 자세히 보면 3개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레몬밤은 옆의 바질과 함께 자란다. 성장속도와 수량으로는 단연 일등이다. 떡잎은 얼핏 바질과 비슷하게 생겼다. 심어놓고서야 안 사실이지만 레몬밤이 가장 잘 자란다고 한다. .. 2020. 12. 5. 식물일기: 허브 - 1 식물을 심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하도 야채를 안 먹다보니 왠지 건강의 위험을 느껴 샐러드를 챙겨 먹으려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하지만 구성이 괜찮으면 가격이 별로였다. 아니면 그 반대거나. 그래서 든 생각. 그냥 까짓거 직접 길러서 먹어보자. 예전에 무순을 키운 적이 있었는데, 새싹채소가 그렇게 빨리 자라는 줄 모르고 화분에 왕창 뿌렸더랬다. 먹는 속도보다 자라는 속도가 빨랐다. 그래도 그 알싸한 맛은 뿌듯함의 맛으로 기억에 남았다. 아무튼, 무순을 제외하곤 대부분 식물이 내 손에서 살아남은 경우는 무척 드물다. 그래도 이번에는 한번 잘 키워서 보람도 얻고 건강도 얻어보리라. 2020.11.01인터넷을 찾아보니 다이소에서 얼추 준비물을 구할 수 있을 듯 싶어 다이소에서 마음껏 골랐다. 원래는 금방 수확할 .. 2020. 11. 6. 맥락없는 혐오 원래 드라마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매주, 매 시간 일정한 때에 봐야하는 게 번거로운 건 물론이고 절묘한 순간에 흐름이 끊이는 찝찝함이 싫다. 또 가끔은 지나친 현실반영 요소로 인해 깊게 감정이입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이유로 드라마를 즐기진 않지만, 최근에는 한 중국 드라마를 보았다. 성격, 출신, 생김새, 집안 등 모든 것이 다른 특이하고도 평범한 다섯 여자들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딱 보기 싫어졌다. '맥락 없는 혐오'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어디나 갈등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따뜻함과 믿음으로 포장된 '맹목적인 애정'이 있는 반면 '맥락 없는 혐오'도 존재한다. 드라마 속 맹목적인 애정이나 맥락 없는 혐오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보는 .. 2020. 5. 2. 톺아보다 10월호 월간 도예지를 보다 생소한 단어를 마주쳐 그 뜻을 찾아보았다.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 '톺다'라는 말은 삼의 껍질 따위의 거친 부분을 날이 작고 고른 톱으로 훑어내 다듬는 일을 뜻한다. 즉 '톱질하다 > 톱하다 > 톺다'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2019. 10. 7.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