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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글18

1년 동안 새 옷 사지 않기 나는 옷 사는 걸 좋아한다. 어디를 갈 때 입을 옷, 누구를 만날 때 입을 옷, 우연히 광고에서 봤는데 한정판매인 옷, 등등 사야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나는 입는 옷만 입는다. 또 하루에 옷을 여러벌 입지도 못한다. 근데도 자꾸만 새 옷을 보면 갖고 싶다. 애써 계절마다 안입는 옷을 정리하고, 중고나라나 당근마켓에 팔면서, - ‘그래. 괜찮아. 이정도면 그리 많은 편도 아닌걸.’ 스스로 되뇌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옷을 정리했으면 그대로 그치면 될텐데. 빈자리가 생겼으니 또 새옷을 살 궁리를 한다. - 나는 헌책방을 좋아한다. 들어가면 꼭 하나쯤은 집으로 데려오려고 애쓴다. 그냥 뭔가를 사는 걸 좋아하는 걸지도. 얼마 전 헌책방을 들렀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정리, 수납 책이 모여있는 곳.. 2023. 8. 18.
가랑비 가랑비가 내린다. 빨간 두툼한 패딩을 입고 씩씩히 걸어가는 젊은이다. 눌릴대로 눌려 간신히 간신히 엉겨붙은 털모자를 쓴 절름발이 노인이다. 다 펴지도 않은 노란 우산을 들고 잔걸음으로 달려나오는 사람이 노인을 향한다. 가랑비가 포근하다. 2023. 2. 2.
쌍무지개 쌍무지개가 떴다며 사진 한 장을 받았다. 좋은 걸 보면 주고 싶고, 맛있는 걸 먹으면 먹이고 싶고, 날씨가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생각나는데 바쁘다는 말로, 피곤하단 말로 짧아지는 전화 속에는 다 줄 수 없는 마음을 동네 사진 한 장에 가득 담아 보내왔다. 고독은 내곁에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주고 받을 수 없을 때 찾아온다고 한다. 외롭지 않고 외롭게 하지 않기 위해서 한마디라도 더 보내야지. 그러다 나중에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게 되면 그땐 어떡하나. 2021. 8. 23.
손톱 손톱을 기르는 일이 꽤나 멋지고 세련된 것이라 생각할 때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손톱은 조금만 자라나도 거슬리고 불편했다. 그 얕은 틈에 자리잡는 잠깐의 때와 답답하고 둔탁한 느낌이 싫었다. 채 다 자라지도 않은 얕은 손톱을 깎는 것도 싫었다. 그러다 사는 데 정신이 팔려 손톱을 깎는 사소한 일 조차 내일로 내일로 미루고 나면 어느새 부쩍 자라나있다. 게으름의 징표처럼 보이다가도 무언가를 견뎌낸 것처럼도 보인다. 집에 돌아가면, 손톱을 깎아야겠다. 2021. 2. 13.
나의 날들 나의 무수한 날들 속에는 당신이 없이 살아온 날들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날들 그리고 아마도 당신이 없더라도 살아내야하는 날들이 있다. 2018.11.27 2021. 1. 25.
2018.12.7 저편에는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그래도 가야만하는 곳이 있다. 그곳을 가기 위해선 물을 건너야만 한다. 물 속에서 발을 디뎌 걷다가 점점 깊어지는 바닥에 겁이 났다. 더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겁이 났다. 그래도 출렁이던 물결이 기억 나 그를 믿기로했다. 하지만 물결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오도가도 못하고 수면에 우두커니 떠있었다. 이제 발을 딛기엔 바닥은 너무 깊은 것만 같다. 끝을 모르는 바닥까지 가라앉아 걸어야할까 다시 물결이 움직이길 기다려야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계속 동동거리고 있다. 2021. 1. 25.
공식 사람이 사랑을 하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사람과 나 사이엔 언제나 성립하는 공식이 있어 항상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큰 착각이었다. 모든 수식 그리고 어떤 공식도 언제나 성립하진 않는다. 혹은 언제나 예외가 있다. 가설이 부서지는 건 잘못된 증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항상 성립하는 공식을 찾기위해 들이는 공력에 비하면 턱없이 쉽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가설이 거짓 이야기라는 뜻을 갖고 있어서일까. 어차피 공식화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2019.5.18 2021. 1. 25.
바다 바다는 물을 골라대지 않는다. 좁은 강줄기나 넓은 강줄기 약한 강줄기나 세찬 강줄기를 골라대지 않는다. 그렇게 모인 물은 어느새 큰 바다가 된다. - 2016.9.12 씀 2020. 12. 28.
맥락없는 혐오 원래 드라마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매주, 매 시간 일정한 때에 봐야하는 게 번거로운 건 물론이고 절묘한 순간에 흐름이 끊이는 찝찝함이 싫다. 또 가끔은 지나친 현실반영 요소로 인해 깊게 감정이입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이유로 드라마를 즐기진 않지만, 최근에는 한 중국 드라마를 보았다. 성격, 출신, 생김새, 집안 등 모든 것이 다른 특이하고도 평범한 다섯 여자들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딱 보기 싫어졌다. '맥락 없는 혐오'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어디나 갈등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따뜻함과 믿음으로 포장된 '맹목적인 애정'이 있는 반면 '맥락 없는 혐오'도 존재한다. 드라마 속 맹목적인 애정이나 맥락 없는 혐오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보는 .. 2020.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