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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일본사 (작성중)

by -GOYO- 2022. 11. 3.

가까운 이웃나라지만 여러 현실과 감정이 뒤엉켜 사실 자세히는 모르는, 어쩌면 깊이 알려하지 않았던 나라, 일본.

일본 여행을 계획하다 문득 일본사를 한번 제대로 알아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동한 김에 일본사를 한번 훑어보며 정리하고자 한다. 정리라고는 하나 책 한권을 요약해서 사진자료와 함께 짜깁기하는 것에 그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시작이 되어 점점 재밌는 책을 추가하고, 살아있는 정보들로 살을 붙여나간다면 꽤 쓸모있다고 느껴지는 지식 일기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척 뿌듯하겠다.

한 나라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구석기시대'부터 출발하는 구성은 익숙한 흐름이다. 때문에 항상 새학기에 펼친 역사책의 첫 단원은 뾰족하게 깎인 돌과 원시인들의 사진으로 채워졌고, 역사 과목의 1번 문제는 '거저' 가져가는 쉬운 문제로 여겨졌다. 일본사를 정리해보고자 택한 책<일본사 다이제스트 100>도 일본사의 주요 100개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처음 또한 구석기시대다. (참고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인터넷으로 사진자료를 포함한 전문을 열람할 수 있으며, 시간에 따른 단편적 사건들로 꾸려져있어 살을 붙이는 뼈대로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구석기시대

(12만 년 전 ~ 기원전 약 1만1천 년)

문자로 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선사시대, 그 중에서도 구석기시대는 사실 그 자료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지금의 지리적 구분을 적용하기 애매한 부분도 많다. 일본의 구석기시대 자료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비교적 최근인 1949년 군마(群馬)현 이와주쿠(岩宿)에서 구석기유적에서 타제석기가 발견되어 12만년 전 사람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석기시대는 국가 개념이 없을 때이므로 이를 일본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보긴 어렵다. 

구석기시대 유적은 오늘날 국가들의 직접적인 정통성을 잇는 존재를 증명한다기보다 대륙을 이동하며 남은 인류의 발자취 정도 선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부합할지도 모른다. 허나 어느 국가든 역사의 시작인 이 구석기시대의 유적부터 각국의 역사로 편입하며 국가의 유구성과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때문에 더 오래된 연대의 유물, 유적을 발견해 자국의 유구한 정통성이 입증되길 바라는 은근한 기대와 압박이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관념이 독이 되어 구석기시대 날조라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1992년, '신의 손'이라 불리던 사람이 있었다. 동북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장이기도 한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는 가미타카모리의 구릉에서 40만 년 전, 50만 년 전, 60만 년 전의 석기를 잇달아 발굴했다. 일본 석기시대의 최고(最古) 기록을 연례행사처럼 갱신하며 '신의 손'이라 불리게 되고, 업적이 1998년부터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몰래 석기 유물을 땅에 묻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마이니치(每日)신문에 폭로되었다. 개인의 명예를 넘어 연대를 끌어올리고자 했던 국가적 풍토와 집단적 열망이 빚어낸, 다신 있어서는 안 될 부끄럽고 안타까운 사건으로 남았다.

구석기시대 일본열도의 모습. 육지와 연결되어 지금의 동해부분이 마치 거대한 호수처럼 보인다. (ⓒ 정혜선, 2011, 『일본사 다이제스트 100』, 가람기획)
군마(群馬)현 이와주쿠(岩宿) 구석기 유적의 위치. 1949년 이곳에서 타제석기(뗀석기)가 발견되어 구석기시대 일본에 사람이 존재했음이 확인되었다. (ⓒ Google 지도)
후지무라 신이치의 날조 인정 유적지. (ⓒ동아일보, 2001, "日 구석기 유적지 20곳 이상 날조")
당시 조선일보에 후지무라 신이치의 구석기시대 유적 날조사건이 실린 기사. (ⓒ 조선일보. 2000.11.06 "日 '70만년전 유물'은 조작 - 발굴단장이 미리 묻는 장면 몰카에 찍혀 올해 다른 유적서도 날조 ... 고고학계 충격", SH1 31면)

 

 


일본의 신석기시대: 조몬시대

(기원전 1만 년 전후 ~ 기원전 4세기경)

기원전 1만년 무렵, 지구를 뒤덮었던 빙하기가 끝났다. 빙하가 녹으며 바닷물이 차올랐고, 대륙과 이어져있던 일본은 사방이 바다로 에워싸인 열도가 되었다. 이 때부터 오늘날의 일본인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이들이 제작 및 사용하던 토기는 표면에 새끼줄(繩) 무늬가 있어 즐문(繩文)토기라 불리는데, 조몬(繩文 = 즐문, 죠몽, 죠몬)시대는 바로 이 토기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조몬시대에 들어서면서 지리적으로 고립됨에 따라 자국만의 독특한 성격과 무노하를 구축하게 된다. 조몬시대 사람들은 토기는 물론, 마제석기(간석기)를 만들어냈다. 또한 수렵, 어로, 채집 활동을 하였으며 주술과 제사를 행했다. 이처럼 조몬시대 사람들은 지리적 고립에도 불구하고 신석기시대의 면모를 보이는 활동들을 이어나갔으나, 신석기혁명이라고 불리는 농경과 목축의 단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기원전 3세기 무렵, 바다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있기 전까지 약 1만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동안 조몬시대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수많은 양식과 풍부한 디자인의 조몬토기, 고도로 발달한 채집, 수렵, 어로를 꾸려갔다. 조몬시대는 일본 역사의 원형이 만들어진 시대이며 어떤 지역보다도 원시의 모습이 강하게 남아있는 시대이다.

조몬시대 말기 차광기(遮光器)토우. 조몬시대의 대표적인 토우. 원래는 전체가 붉게 칠해져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오모리현 쓰가루시 기즈쿠리카메가오카 출토. 높이 367mm.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조몬시대 후기 토우(국보). 조보나이노 유적 출토, 높이 415, 너비 201mm. (ⓒ소장 하코다테시 조몬문화교류센터)
조몬시대 중기 토기. 모리마치 내 유적 출토. (ⓒ소장 모리마치 유적발굴조사사무소)

 


출처 및 참고

─ 정혜선, 2011,  『일본사 다이제스트 100』, 가람기획.

 

추후 참고할만한 자료

고든 차일드, 김성태 외 1인 역, 2013, 『고든 차일드의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 주류성.